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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ga escape, jeju (works at fig.architects / co-work with eggplant factory)



비일상적 머무름을 위한 두 가지 제안













비일상의 풍경과 공간


 제주에 지어진 이 집들은 보통의 생활을 위한 집이 아니다. 여러 사람들이 짧게 머무르며 점점 줄어드는 시간을 아쉬워할 수밖에 없는, 여행자의 집이다. 사람들이 특별히 제주를 찾는 이유는 일상적이지 않음 때문이다. 제주는 섬이며, 화산이다. 바다의 빛은 푸르고, 돌은 검다. 사람들은 다른 말로 이야기하고, 풀과 나무는 낮고 풍성하다. 이 모든 것들로 하여금 제주의 풍경은 보통의 일상과 다름을 느끼게 한다.
 이 집에 대한 상상의 단초는 비일상적 풍경과 공간이다. 여행자를 위한 집을 계획하는데 앞서 제주의 비일상적인 풍경과 그것을 담는 공간에 대해서 고민하였다. 제주에서의 풍경은 바라봄의 대상이며 동시에 경험의 대상이다. 한라산과 오름, 수평선은 우리가 제주에 있음을 알게 하며, 돌담과 마을, 귤밭과 온화한 공기는 걷고 만지고, 때로는 쉬게 한다. 이런 두 가지 층위의 경험이 제주만의 특별함을 만든다. 한편, 제주의 공간은 돌담에서 시작된다. 마을 입구에서 시작된 돌담은 올레를 이루어가며 때로는 대문이 되고, 지붕을 받치는 벽이 되기도 하며, 아늑한 중정을 만드는 경계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이어지는 돌담의 흐름은 다시 올레를 이루고 공간을 만들며 제주의 마을이 된다. 경계를 넘나들며 공간을 만들어내는 돌담의 흐름은 낮은 지붕과 회벽, 낯선 식물들과 어우러지며 다양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올레로부터 바깥채, 마당, 안채, 안마당으로 이어지는 공간의 켜는 그 끝에서 깊은 아늑함, 옴팡짐을 느끼게 한다. 하가리에 지어진 이 여행자의 마을은 제주의 원경을 담고, 근경을 경험하게 하며, 제주의 공간과 마을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닮도록 하였다.


풍경을 담는 방법


 제주의 서쪽, 하가리에 위치한 대지는 한편으론 주변 밭 너머로 한라산과 낮은 오름이 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작은 마을 너머 애월 바다의 수평선이 보인다. 대지가 갖는 이 변치 않을 원경과 다르게, 근경은 조금씩 변하고 있고 이 변화는 우리가 기대하는 제주의 풍경에서 거리가 먼 것일 가능성이 많았다. 따라서 우선 1,600평이 넘는 큰 대지를 세 덩어리로 나누어, 새로 계획할 마을과 그 너머의 풍경 사이에 여지를 마련하였다. 집들이 앉혀질 가운데의 대지는 우리가 확보한 제주의 근경과 그 뒤로의 풍경에 적극적으로 관계하도록 계획의 방향을 잡았다.
 마을 옆의 두 밭은 각각 경험을 위한 귤 밭과 관조를 위한 계절 작물의 밭으로 성격 지었다. 이 집에 머무는 이들은 귤 밭을 통해 제주 농가의 삶을 체험하고,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너른 밭을 감상하며 제주의 근경을 경험한다. 이러한 두 밭과 마을이 만나는 경계는 필연적으로 각각 다른 제스쳐를 취해야 했다. 귤 밭과 만나는 경계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적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큰 홀과 마당을 계획하였고, 다른 하나는 극적인 시각적 연계를 위해 긴 조망공간을 계획하였다. 이는 다시 이 경계에 놓이는 집의 유형과 관계하여, 전자는 켜켜의 외부공간을 통해 공간적 층위를 만들어내는 깊은 집과 후자는 수평선과 지평선의 압도적인 뷰를 마주하기 위한 전망대인 긴 집으로 이어진다. 전자는 경험적이고 아기자기한 풍경에 대한 대응이라면 후자는 시각적이고 압도적인 풍경에 대한 대응이다.  
 

마을과 공간을 만드는 방법


 우리는 제주의 공간을 형성하는 논리로 돌담에 의한 연속적 공간구성에 대해 집중하였고, 이를 통해 제주의 마을과 집이 갖는 공간적 특징과 관계를 하가리의 대지로 옮겨오려 하였다. 대지 전체를 아우르며 돌담은 콘크리트와 함께 공간과 경계를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콘크리트가 공간을 구축하고 경계를 명확히 하는 역할을 한다면, 돌담은 다시 그 경계를 느슨하게 조정하고 다양한 공간의 켜를 만들어낸다. 돌담과 콘크리트의 조합은 집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풍성한 풍경을 만들어내며 공간의 깊이를 형성한다.
 깊은 집에서 돌담은 진입 동선을 따라 다양한 외부공간을 형성한다. 마을 길에서 이어지는 골목을 거쳐 작고 깊은 모래 마당을 만나고, 다시 좁은 골목을 지나 바깥마당으로 진입한다. 바깥채와 바깥마당은 외부의 풍경을 받아들여 개방적 공간감을 갖도록 계획하였다. 안채에 들어가기 위해선 다시 작은 정원을 거쳐야 하며, 이 작은 정원은 깊은 처마와 높은 담을 통해 외부의 풍경과 내밀한 공간 사이에 심리적 완충 역할을 하도록 두었다. 안채를 거쳐야만 갈 수 있는 중정은 외부임에도 가장 내밀한 공간감을 가지며, 돌담과 콘크리트가 만들어내는 여러 켜의 풍경 너머 제주의 원경을 담는다.
 긴 집에서의 돌담은 마을의 끝을 형성한다. 돌담을 지나 펼쳐지는 풍경은 마을의 작고 아늑한 공간감에서 광활하게 펼쳐지는 바다와 들의 수평선과 지평선으로 극적 반전을 이룬다. 실내에서 다시 드러나는 돌담과 콘크리트, 투명한 유리로만 구획된 기다란 공간은 외부의 공간감을 실내로 끌어들여 마을의 끝에서 제주의 풍경과 오롯이 대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비일상적 머무름을 위한 두 가지 제안

 
 처음, 이 프로젝트는 제주의 비일상적 풍경과 공간을 어떻게 담을지에 대한 같은 물음으로 시작되었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깊은 집과 긴 집이라는 대비되는 두 가지 제안으로 이루어졌다. 여행자라는 무명 다수의 건축주와 제주도의 다양한 풍경은 운이 좋게도 넓은 대지와 열린 설계조건과 만나 다양한 공간을 펼쳐놓을 수 있게 하였다. 깊은 집의 켜켜의 공간으로 숨어들어 풍경과 만나는 방법과 긴 집의 넓고 적막한 공간에 떨어져 나와 풍경을 마주하는 방법은 이 집을 방문할 이름 모를 여러 여행자를 위함이기도 하지만, 각각의 여행자에게 제주의 풍경을 느끼게 하는 여러 제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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